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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북한산성 14문 종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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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코스 |
코스지도 참조(지도를 복사해 오셔서 체크하면서 산행하면 재미가 배가 될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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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중간 탈출로가 많이 있습니다(힘드시면 언제든지 탈출 가능합니다) |
산행일시 |
2011.05.10 오전9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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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장소 |
불광역 2번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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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사항 |
산행복장. 중식. 식수. 방풍의. 스틱 외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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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 |
하산후1.000원 (뒤풀이 1/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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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풀이는 원하시는 회원으로 1차만 하겠습니다 |
산행도우미 |
샤프대장 011*894*8913 (꼭 입력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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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하실 분들은 꼬리글을 이쁘게 달아주세요.. |
유의사항 |
1. 산행 중 자신의 실수로 발생하는 산행사고는 자신이 책임져야합니다. 3050산울림 산악회는 책임의 주체가 없으며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2. 시간을 꼭 지켜서 많은 산우님들이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는 불편을 주지 맙시다. 3. 혼자만 앞서 달려가기 보다는 힘들어하는 산우님을 도와주며 함께 하는 산행이 더 즐겁습니다. 4. 산행시 개인행동을 자제하고 산행대장/산행리더 앞에는 앞서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5. 안전한 산행을 위하여 산행 중 음주및흡연은 자제(적당히) 합니다. 6. 산행대장/산행리더의 지시/안내에 따르지 않는 회원에 책임 지지 않습니다. 상기 산행은 3050산울림산악회 규칙에 따라 진행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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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 사적 제16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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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북한산성(北漢山城) |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
수량/면적 | 543,795㎡ |
지 정 일 | 1968.12.05 |
소 재 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1-1외 서울 은평구,성북구,강 |
시 대 | 삼국시대 |
소 유 자 | 국유 |
관 리 자 | 서울시, 고양시 |
백제가 수도를 하남 위례성으로 정했을 때 도성을 지키던 북방의 성이다.
백제 개로왕 5년(132)에 세워진 곳으로,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이 있을 때 현종이 고려 태조의 관을 이곳으로 옮겨 오기도 했다. 고려 고종 19년(1232)에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고, 우왕 13년(1387)에 성을 다시 고쳐지었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 외곽을 고쳐짓자는 의견이 일어나 숙종 37년(1711) 왕명으로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지었다. 성의 규모는 대서문, 동서문, 북문 등 13개의 성문과 불을 피우던 곳으로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다. 성내에는 중흥사를 비롯한 12개의 사찰과 99개의 우물, 26개의 작은 저수지, 그리고 8개의 창고가 있었다. 현재 북한산성에는 삼국시대의 토성이 약간 남아 있기는 하나 대개 조선 숙종 때 쌓은 것으로 여장은 허물어 졌고, 대서문과 장대지·우물터·건물터로 생각되는 방어시설 일부가 남아있다. 이 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도성을 지키는 중요한 곳이었다. 북한산성이란 이름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132년(백제(百濟)개로왕(蓋로王)5)에 이미 나타나고 있고, 신라(新羅)는 이곳의 비봉(碑峰)에 진흥왕이 순수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603년(신라(新羅) 진평왕(眞平王)25)에는 고구려 장군 고승(高勝)이 북한산성을 포위 공격하자 왕이 10,000명의 군사로 구원한 기록이 있고, 661년에는 고구려의 장군 뇌음신(惱音信)이 말갈군과 함께 북한산성을 20여일간 포위 공격하자 성주이던 동타천(冬陀川)이 성안의 주민 2,800명으로 필사의 결전으로 물리친 기록이 있다. 특히 이 전투는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키고 백제부흥군의 도전을 받고 있던 때이므로 만약 고구려에게 함락되었다면 삼국 통일 계획에 큰 변화를 초래하였을 것이다. 이 전공으로 성주 동타천은 대사(大舍, 제12관등)에서 대나마(大奈麻, 제10관등)로 승급되었다.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이 있자 고려 현종은 고려 태조의 재궁(梓宮)을 옮겨오고 증축하였다. 1232년 (고종(高宗)19)에는 이곳에서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고, 1387년(우왕(禑王)13)에도 개축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외침을 자주 당하자 도성의 외곽 산성으로 축성론(築城論)이 일어나 1659년(효종(孝宗)10) 송시열(宋時烈)에게 명하여 수축하게 하고, 1711년(숙종(肅宗)37) 왕명으로 대대적인 축성 공사를 하여 둘레 7,620보의 석성이 완성되었다. 성의 규모는 대서문(大西門)·동북문(東北門)·북문(北門) 등 3개의 성문과 10개의 암문(暗門), 그리고 시단봉(柴丹峰) 위의 동장대(東將臺)·나한봉(羅漢峰) 동북에 남장대·중성문(中城門) 서북에 북장대가 있었다. 성은 다시 중성(中城)을 만들었으며, 처음엔 경리청(經理廳)을 두었다가 1747년 (영조(英祖)23)에는 총융청(摠戎廳)에 속하여 관리되었다. 또한 이듬해에는 상원봉(上元峰) 아래에 130칸의 행궁과 140칸의 군창(軍倉)을 지은 바 있다. 성내에는 승군(僧軍)을 위한 136칸의 중흥사(重興寺)가 승군 총섭(總攝)이 있는 곳이었고, 이 밖에도 11개의 사찰과 2개의 암자가 있었다. 성 안에는 8개소의 창고가 있었으며, 99개소의 우물과 26개소의 저수지가 있었다. 현재의 북한산성에는 삼국시대의 토성이 약간 남아 있기는 하나 대개 조선 숙종 때 쌓은 것으로 성곽의 여장은 허물어 졌으나, 현재 대서문(大西門)이 남아 있고 장대지(將臺址)·우물터·건물터로 추정되는 방어 시설의 일부가 있다. 성벽은 아직도 잘 남아 있는 부분이 많다. |
1..수문지(水門址) _ 대서문 북서쪽 근처 산성계곡에 있었던 폭 50척(15.5m), 높이 16척(5m)인 대규모 수문으로 1925년 8월 을축년 대홍수때 성돌과 장대석등 흔적을 싹쓸이 하다시피한 재앙에 거의다 유실되고 흔적 일부만 남아있다.
2..시구문(屍柩門) _ 원 이름은 서암문(西暗門), 시신을 내보내는 출구
* 현판은 시구문으로 되어있음 *
3..북문(北門) _ 북쪽을 대표하는 성문으로 원효봉(元曉峰)과 영취봉(靈炊峰_현재 염초봉의 옛이름) 사이
해발 430m 안부(鞍部)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금은 문루(門樓)가 폐기된 상태
북쪽에는 '大'자를 붙이지 않으므로 그냥 북문이라 칭함
4..위문(衛門) _ 원 이름은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 백운대(白雲臺)와 만경대(萬景臺) 사이
해발 720m 높이에 위치한 북한산성중 가장 고지에 위치한 성문.
5..용암문(龍巖門) _ 원래 이름은 용암봉암문(龍巖峰暗門)으로 해발 580m 용암봉 기슭에 위치
이 일대를 수비하던 승병(僧兵)들의 용암사(龍巖寺)가 있었다.
6..대동문(大東門) _ 동쪽을 대표하는 성문으로 진달래능선 정상부인 해발 540m 지점에 위치한 성문
왜란,호란,사변으로 없어진 문루를 1993년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9..대남문(大南門) _ 남쪽을 대표하는 성문으로 원래 이름은 문수봉암문(文殊峰暗門) 보현봉과 문수봉을
잇는 663m 능선안부에 위치한 성문.
10..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 _ 문수봉과 나한봉(羅漢峰) 사이 694m 에 위치한 성문으로 산성주능선과
의상능선, 비봉(碑峰)능선의 갈림길에 위치한 小門
11..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 _ 나월봉(羅月峰)과 증취봉(甑炊峰)사이..해발 521m의 성문
7개 암문중 가장 규모가 크고, 상부위쪽을 파서 홍예문(紅霓門)처럼 만든 성문
원래 소남문(小南門)이라 칭한 것으로 추정되며
근처에 원각사가 있어 원각사암문(圓覺寺暗門)이라고도 불리웠다.
현판위를 자세히보면 '소남문'이란 글씨가 남아있다.(직접 보지는 못했음)
13..중성문(中城門) _ 범용사와 용학사 사이에 위치한 성문으로 1998년 문루도 올리고 성벽도 일부 복원한 상태.
지금은 소실되고 흔적만 일부남아 있지만 암문이 두개 더 있어 16성문이란 설도 있음.
14..대서문(大西門) _ 의상봉 서북쪽 해발 163m의 낮은 구릉에 위치한 서쪽을 대표하는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正門이라 한다.
지금의 문루는 1958년 경기도지사 최한길의 주도로 복원된 상태로
[보충설명]
**암문(暗門) _ 성안에 필요한 병기와 식량을 운방하고, 구원요청, 기습이나 역습할 때 사용하기 위한
문루가 엇는 일종의 비상출입구
(현재 7개의 암문이 있다 _ ① 청수동암문...② 부왕동암문...③ 가사동암문...④ 서암문
⑤ 백운봉암문(위문)...⑥ 용암봉암문(용암문)...⑦ 동암문(보국문)
**문루(門樓) _ 성문위에 지은 장수의 지휘소로써, 성빡 적정을 살피는 망루(望樓)
**행궁(行宮) _ 임금이 왕궁 밖에서 머물던 별궁(別宮)으로 숙종 때 축조
**홍예문(紅霓門) _ 성문 윗머리 부분을 무지개처럼 반원형으로 만든문
**~~지(址) _ ~~터의 한자로써 실물은 없고 흔적만 남아 있을때 사용하는 용어
(수문지..행궁지..부흥사지 등)
**수문(水門) _ 성곽 배수 시설로 규모가 크고 문의 형식을 갖춘것
**수구(水口) _ 성곽의 배수 시설로 작은 것을 수구라 함.
http://cafe.daum.net/toyoyama/3RkQ/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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