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 중국의 사신이 해남 땅끝으로 와 한 산을 가리켰다. “내가 듣기에 이 나라에 달마산이 있다 하는데 이 산이 그 산인가.” 주민들은 `그렇다’ 했다. 사신은 산을 향해 예를 행하고 그 산을 그림으로 그려갔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만 이름만 듣고 멀리 공경할 뿐인데 그대들은 이곳에서 나고 자랐으니 부럽다. 이 산은 참으로 달마대사가 상주할 땅이다.”
해남 달마산. 정말 달마가 해남으로 왔을까. 중국에 건너가 선종을 창시한 달마는 모함을 받고 죽음에까지 이른다. 그런데 달마가 죽은 지 3년, 소문이 퍼진다. 부처의 몸이 되어 짚신 한 짝을 지팡이에 꿰어 차고 서천(인도)으로 갔다는. 달마가 인도로 갔다는 게 널리 알려진 달마 전설이다. 그러나 달마산 기슭에 자리한 미황사의 옛 기록들은 달마가 인도로 간 것이 아니라 해남 땅끝으로 왔다고 주장한다. 미황사를 달마대사의 법신이 계시는 곳이라 소개하고 있고, 달마산이라는 이름 유래 또한 그러하다.
달마산은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하다. 그슥한 숲, 수많은 기암괴석과 수려한 암봉, 푸른 바다가 훤하고, 섬과 섬 사이로 붉게 지는 해넘이. 산행을 마치면 달마가 해남 땅끝으로 왔다는 전설에 `한 표’를 던지게 된다.
`햇살 전각’을 세운 미황사
절천년고찰에 든다. 미황사(美黃寺). 소 울음소리가 아름답게 울릴 것 같은 고요한 절, 우전국의 왕 금인(金人)이 점지해준 절. 아침, 금인은 햇살이다. 산등성 너머 와 곱게 내려앉았다. 숲에, 절 마당에 따뜻한 `햇살 전각’을 세웠다.
자하루(紫霞樓) 계단을 따라 올라서니 하늘이 먼저다. 하늘 아래 반듯한 대웅보전이 수더분하게 있다. 대웅전 마당에 서서 둘러본다. 전각 뒤로 펼쳐진 달마산의 우뚝한 기암. 거대한 수석을 세워놓았다. 산과 가람의 어울림, 웅장한 조화가 편안하다.
대웅보전 아래서 놀고 있는 물고기, 게, 거북이 자라. 대웅보전 4개의 초석에는 바다 속인 것 마냥 헤엄치는 바다생물이 생생하다.
대웅보전에 들어 절 삼배를 올려야 한다. 그것만으로 소원 하나가 이뤄진다 한다. 법당에서 3배를 하면 3천불이며, 법당 밖에서 3배를 하면 3만배. 절 안에는 일천 부처가 그려진 천불도가 있다. 달마산 희유한 봉우리는 일만 부처에 비유된다. 미황사 사적비문에 일만 부처 얘기가 있다.
달마대사가 머물고도 남을 비경 꼭꼭 숨겨둔 산
산에 오른다. 달마산은 산악미가 넘치는 산. 들쑥날쑥한 바위꼭대기에 올라섰다가 에돌았다가 다시 올라 서 기암절벽을 타고 가야한다.
고려 때 미황사 무외스님이 말한 `혹 사자가 찡그리고 하품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용과 호랑이가 발톱과 이빨을 벌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는 암벽을 다 거쳐야 한다. 밧줄 잡고 오르고 낭떠러지 위를 걸어야한다.
하루 산행으로 미황사에서 불썬봉에 올라 다시 미황사로 내려오는 3시간 정도의 코스가 일반적이지만 달마산의 아름다움을 보려면 용과 호랑이의 발톱 같고 이빨 같은 능선을 다 올라봐야 한다. 무외스님은 미황사 사적기에 적었다. `상쾌하고 아름다움이 속세의 경치가 아니니라’. 달마대사가 머물고도 남을 비경을 산은 꼭꼭 숨겨뒀다. 미황사에서 불썬봉, 문바위재, 떡봉으로 해서 도솔암으로. 족히 5시간이 걸리는 산행이지만 온갖 재미로 발걸음이 가볍다.
달마산은 높이 489미터로 그리 높지 않은 산. 동백숲 따라 오르면 달마산 주봉인 불썬봉이 금방이다. 불썬봉에 오르면 달마산의 묘미를 바로 알아차리게 된다. 뾰족뾰족한 기암이 등줄기 따라 줄지어 솟아올랐다. 그 너머로 둥글게 내보이는 푸른 다도해. 완도가 전체 모습을 드러내고, 소안도 청산도가 이어진다. 고개 돌리면, 산중턱에 단아한 모습으로 자리 잡은 미황사와 멀리 바다 건너 진도의 바다와 섬들. 가슴이 활짝 열린다.
불썬봉에는 봉수대가 있다. 완도의 숙승봉과 해남 북일면 좌일산에서 횃불을 이어받았다. `불썬봉’이란 이름도 여기에서 연유됐다. `불을 썼던(붙였던) 봉우리’. 봉수대는 산 아래 사람들이 극심한 가뭄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기도 하다.
아슬아슬한 바윗길, 돌아서면 일망무제
문바위재는 그 아래로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조금만 올라서면 `꼭꼭 숨겨둔 비경’이 있다. 문바위재에 올라서면 미황사에서 올려다봤던 거대한 수석 같은 바위에 올라 선 것인데, 절벽 아래 툭툭 솟아오른 바위기둥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깎아놓은 것처럼 여러 개의 바위기둥이 솟구쳐 있다. 홀아비바위는 외롭게 서서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바위능선길은 문바위재부터 험해진다. 아슬아슬한 바윗길이 긴장케 한다. 그러나 앞에도 뒤에도 날카로운 칼바위들 위압적이고, 바위를 끼고 돌아서면 일망무제의 바다. 완도 바다는 푸르고 진도 바다는 햇빛에 은빛으로 빛난다. 한 고개 넘어설 때마다 새로운 풍광이 반겨준다.
꼭 찾고 싶었던 것이 달마산 `금샘’이었다. 말 그대로 금빛을 두른 채 반짝이는 신비의 샘이다. 작은금샘, 큰금샘이 바위틈 사이에 숨어 있다. 보는 순간 환상에 젖을 수밖에 없단다. 과학적으로 따지면 석영의 주성분인 석질의 영향으로 금빛을 연출한다고 한다. 그러나 산꼭대기 신비한 샘, 보고픈 마음 간절했으나, `천 길이나 되는 벽 아래 미타혈이라는 구멍에서 남쪽으로 백여 보를 가면 높은 바위 아래 네모진 연못’이 있다는데 끝내 찾지 못했다.
바람도 풍경도 도솔천으로 흐르는 도솔암
산행 끝지점에서는 가히 `작은 금강산’임을 실감케 하는 풍경을 만난다. 위엄찬 바위들이 연달아 솟아 조화를 이룬 도솔봉. 석양빛에 엉긴 바위들은 신비함을 연출해낸다.
그리고 깎아지른 바위 벼랑 사이에 차곡차곡 돌을 쌓아올려 다진 터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은 자그마한 암자, 도솔암. 어느 이의 말처럼 `어느 천상도(天上圖)가 여기에 비길 수 있을까’. 도솔암은 의상대사가 미황사를 세우기 전에 수행정진하려 지었던 암자라 한다. 정유재란 당시 사라지고 2002년 오대산 월정사에 있던 법조 스님이 새로 지었다 한다. 원효대사 서산대사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수행을 했으며 서옹스님 청화 스님도 도솔암에서 참선정진을 했다고 하니 예사로운 터가 아닌 듯싶다. 도솔암은 작은 마당에 서면 바람도 풍경도 도솔천처럼 안겨든다.
도솔봉에서 해는 땅끝 바다 너머로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바다도 하늘도 온통 붉은 세상, 그 찬란함에 어두워져도 쉽게 자리를 뜰 수 없다. 글·사진=김창헌 자유기고가
가는 길: 나주 13번 국도 → 영산포 → 영암 → 해남 → 완도방향 13번 국도(왼쪽) → 현산면 → 송지면 → 미황사.
김창헌 님은 한 때 `광주드림’과 문화잡지 `전라도닷컴’ 기자로 일했습니다. 전라도 5일장 취재를 가면, 마실 나간 할머니의 난전을 대신 지키며 장사를 하기도 하는 `개성있는’ 기자였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자유기고가로 펜과 카메라를 놓지 않고 있습니다.